월든

푸른세계_2 2014. 12. 24. 11:44

꽤나 오래전에 베스트셀러로 올라와서 구매했던 도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라는 작가가 월든 호수가 있는 곳에 홀로 집을 지으며 살면서 그곳에서 느끼는 자연의 모습과 그것에서 느껴지는 삶의 본질. 그리고 번화가로부터 동떨어진 곳에서 느끼는 현대사회에 대한 냉철한 비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 작가는 다른 분야에서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정보를 얻고 서로 연결시키는건지 정말로 신기했는데, 소로우 역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28세라는 나이에 속세를 등지고 선택한 삶. 나무 판자들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최소한의 도구로 이끌어 가는 삶의 방식이 정말로 경이롭다 못해 놀라울 뿐이었다. 이전 하정우배우분이 찍은 영화 롤러코스터에서 육식을 끊으라는 스님의 말이 머릿속에 남았었는데 정말 이 작가는 최소한의 식량으로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것인가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성에 뒤쳐진다는 이유때문에 대학교 학과 통폐합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는 인문학과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한 사람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가 지닌 사회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더불어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고전작품들의 글귀들을 보면서 한참 부족한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특히나 꿈을 쫒기보다는, 안정된 직업을 꿈꾸는 더이상 젊지않은 젊은이 라는 말이 묘하게 박혔다. 고독에 대하여 이야기할때에는 우리는 실제로 사람들을 지나칠 만큼 너무 많이 만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만남의 가치가 퇴색되어 간다고 말했다. 자신 홀로 고독을 즐기며 혼자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면서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그다지 의미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삶에 대한 고민이나 자신만의 생각을 나누는 일들은 점차 줄어들면서 특히나 최근에는 IT기기의 보급과 성장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개인주의적인 삶의 방식 덕분에 만나서도 서로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는 실정이다. 가끔씩 사람들을 만나면서 본인도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인간관계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만나야 그 관계가 유지되는건지. 혹은 그런 것이 가치가 있는것인지에도 의문이 들고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고 또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소통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뉴스에 대한 비판도 뺄 수 없다. 작가가 말하길 사람들은 언제나 뉴스에 목말라 있다고 했다. 어딘가 다녀오거나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새로운 뉴스가 없는건가 묻는다고 말이다. 뉴스가 얼마나 중요할까? 인터넷과 티비에서 하루종일 보여지는 정보들은 사용자로 하여금 한시도 쉬지말고 머릿속에 무언가를 쑤셔넣기를 강요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에대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또다시 뭔가를 쑤셔넣는 그 행위에 대해 갈구하며 중독되어 있고 생활화되어 있어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도 뉴스에 대해 의문을 지니게 된다. 과연 뉴스가 전하려고 하는것이 무엇일까? 한번 보고나서 두번다시 볼만한 가치가 있는 뉴스는 과연 얼마나 될까? 관심조차 없던 곳이나 익숙한 어딘가에 사건 사고가 터지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본인은 안전하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그저 가십거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저 그것은 사람들에게 '조심하라'라고 메세지를 끝없이 던질뿐이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무언가를 하게 되었을때에도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그들을 단순한 피사체로 만들 뿐이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머릿속에 그다지 필요한 것들을 남기지도 못하는 뉴스거리들이 넘쳐나는것이다. 독서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물론 현대문학도 함께 봐야 하지만 고전을 이해하게 되면서 넓어지는 생각의 그릇. 보다 가치있는 독서를 지향하는 것. 본인이 그다지 깊이 있는 독서를 하지는 못한 탓에 그것에 대해 깊이있게 비판하지는 못하지만 최근 들어선 도서정가제와 맞물린 출판사 환경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다지 읽을만한 가치가 없는 책들이 엄청난 양으로 올라오고 있으며 그 책들은 정확하지도 않고 오히려 독자의 깊이있는 생각을 방해하고 시야를 좁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됐다. 게다가 트렌드에 민감한 사회에서 흔히들 '베스트셀러'라고 올라오는 책들을 구매한적이 여러번 있었지만 생각과는 달리 깊이도 없고 재미도 없을뿐더러 생각하던것과 다른 모양(?)의 도서가 도착한 적도 몇번 있었다. 독서라고 하는것에 생각을 깊이 있게 만들고 시야를 넓혀주며 저렴한 비용으로 (더이상 저렴하진 않지만) 타인의 생각과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라는 것에서 조금은 멀어진 느낌이었다.

 월든 호수에서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기도 했다. 순박해 보이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나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 혹은 판자를 훔쳐가는 사람들과 여행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작은 축소판이란 느낌을 받았다. 개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듯한 만남들. 소소한 삶과 행복들. 단지 조금 지루한 듯한 그의 삶이 인생의 본질에 다가가고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주며 복잡한 세상과 거리를 둔 채 깨어난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주변 풍경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루하게 느껴져 후반부는 전부 읽을수가 없었다. 지금 마음이 조금 급한 탓일까. 느림의 미약을 살아가기엔 본인과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상 독서에서 전문도서와 같은 부류에 정보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세상을 느긋하게 경험하는 것 자체도 독서의 매력이자 목적에 부합하는 것중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소로우가 차별을 반대하며 세금납부를 거부하던 시절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을 쓴것이 알게되었는데 이것도 조금 호기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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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우리 삶을 둘러싼 것들에 대한 사회고발의 메시지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누군가 해서는 안될것을 했고 그것을 알아야 하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고발한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보이지만 정말 필요한 것들에게서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정치와 세계에 무관심하면 후에 나라가 정말 소수를 위한 방향으로 흘러갈수도 있고, 그 잘못은 국민에게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무관심한 덕분에 사회가 잘못된 것이라 후세에 영향을 받고 윗사람들을 탓한것도 사실이니 무관심할 수는 없지만 과연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들이 진짜 진실에 대해 알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진다. 언론의 자유도도 낮을뿐더러 부패한것도 사실이니 사실상 프로파간다에 이용되는 도구로써 전락한것도 부정할 수 없는것이 아니겠는가? 참된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제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사 역시 소수에 불과하다. 모 드라마에서 말하듯 가치조차 없는 기사들로 덮여버려서 정작 알아야하는 것들은 덮어버리는 것이 언론의 환경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알랭드보통의 뉴스의 시대도 얼른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