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 상처 받지 않을 권리

푸른세계_2 2015. 2. 3. 10:40

 방송에서 공개강의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 전부터 많은 책을 쓴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일부 방송을 제외하고 인문학 강좌와 같은 곳에서 등장했던 강신주라는 사람이 했던 이야기들은 꽤 재미있다. 그리고 무섭다. 현재 본인이 살아가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이외에 딱히 몸으로 경험해 본 일이 없는지라 ( 물론 나이가 어릴때는 자본주의와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물물교환이나 무조건적 거래.)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회의 모순과 본인이 느끼던 절망적인 감정과 시선에 대해 철학과 인문학작품들을 통해서 더 넓고 나아가는 시선과 생각의 권리를 찾아준 것은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영상으로 접했던 작가의 책을 2권정도 샀는데 1가지는 감정수업과 상처 받지 않을 권리 이다. 감정수업은 유명한 고전소설등에서 소개된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던 것을 작가가 표현한것과 맞물려서 현대인이 느끼는 사회적인 사건에 따른 감정을 보다 철학적이거나 인문학적으로 설명해준 책이다. 덕분에 고전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거부감 없이 오히려 '읽혀져야 할'것들에게 관심을 갖게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나 논리적이지도 않은, 두번다시 볼 가치가 없는 문자들을 열거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는 책들과 차별된 개념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을 소개해주는 작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미리 접하지 못했던 독자라면 어떠했을까? 그 책의 분량으로 본다면 소설이 직접적으로 소개되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그 책의 내용과 구성을 바탕으로 작가의 의견을 내비치기 때문에 그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라면 오히려 하나의 편견으로 자리잡는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본인보다 더욱 많고 깊은 공부를 한 누군가 소개해주는 정보 덕분에 새로운 책을 접하며 알아차리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알고 읽는 것이라면 굉장한 도움과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하겠지만 (이를테면 역사를 공부한 상태에서 그 당시에 작성된 문학장르를 접했을때 느껴지는 시대성) 본인은 약간의 선입견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본인이 지식이 부족한것을 탓해야 하는것도 맞지만 소설과 시 혹은 영화와 같은 부분은 생각에 대해 어느정도 자율성을 유지해야하는것이 아닐까?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데 (사실상 현대에 교육을 통해 이런 생각이 획일화된것도 존재하겠지.) 책에서 인용되거나 작가의 생각이 표현된 부분부분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생긴다. 감정수업이라는 책은 뭐랄까. 책을 소개한 분량과 책의 부피에 비해서 작가의 의견이 굉장히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의 분량에 비해 인용된 작품에서 소개되는 분량이 너무 많은 탓에 작가의 의견이 위축되었다고 할까. 명확한 해결책을 가르쳐주는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획일화된 편견을 주는것과 같기에 대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철학적 역할과 시선에 충실한 책인듯 하다.

 

 두번째로 집어든 책은 지금까지 절반정도를 보았다. 욕망과 욕구를 분리시켜 패션에 대한 인간의 육체적 욕망을 표현해낸 부분과 패션의 흐름과 관련된 자본주의적인 계층적 구조를 설명하는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기존에도 느끼던 사회속에서 자본주의가 얼마나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해답과 가능성을 제시해줄만큼 많은 정보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소개해주고 있다. 보다 개인주의적으로 변해버린 현대사회에서 그 속에 속한채 공허함을 뒤로하고 끝없이 소비만을 강조하는 세계에서 그 소비를 통해 느끼는 개인의 감정과 맞물려서 사회적으로 인간이 소비를 통해 사회와 관련된 구조적인 관계와 역할, 그리고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풀어쓴 부분도 흥미롭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도쿄와 똑같이 만들어진 곳에서 자극적인 삶에 노출된 '이상'의 작품과 함께 자본주의가 들어서며 변화하게 되는 개인의 감정을 통해 그때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와의 관계. 왜 도시와 시골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혹은 지적으로 치중되어서 반응하는지에 대해. 특히 자기방어적인 능력을 스스로 습득한 도시인들이 사회문제를 접할때에 왜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원인과 결과를 보며 지적으로 반응하는가에 대한 이유. 그리고 미치지 않기 위해 지적인 반응 덕분에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시된 도시인들의 삶에서,그리고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지는 시골사람들의 삶에서 개인이 느끼는 개인주의와 자유에 대한 의미. 강조되기 시작하는 화폐의 가치에 대한 설명과 그것으로 변화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이와같은 변화. (특히나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파리의 우울은 정말 궁금하다! ) 그리고 자본주의와 종교, 그리고 도박이 가진 그들의 유사성에 대한 시선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어떻게 그와 같은 시선을 지닌것인지 그들이 대단할뿐이다. )

 

 그런데 의문이 몇가지 생긴다. 도박과 종교가 가진 유사성의 부분.

 

'가능성의 감정 가치인 희망과 걱정이 공통적으로 불안이라는 긴장을 가진 감정인 데 반해서, 필연성의 감정 가치인 안심.만족.실망.우울은 어느 것이나 모두 무엇인가 이완 상태에 있는 평온한 감정이다. '

 

구키 슈조의 논의다. 이를 통해 불안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그 불안을 소모시키며 진행되는 도박과 종교의 유사성에 대한 설명이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불안이라는 감정을 종교와 도박을 통해 해소하는것은 사실이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된다. 종교가 자본주의를 이용하며 소비되는 경제적인 측면만을 고려하는듯 하다. 자신의 소득의 10분의 1이라는 부분을 종교에 헌납해야 한다는 일부 종교의 견해는 과거에 자신이 가진 일정부분을 신에게 바치라는 의미와는 다르게 다소 퇴색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부분 ( 이미 그것은 종교적인것을 떠나서 자본주의에서 화폐가치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역할로 이용되기 때문에 ),혹은 자신이 바친 돈과 함께 그 지역을 부동산 거래로서 이용되는 부분,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라고 말한것과 같은것들은 자본주의가 이루어지면서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렸을때에만 존재하는 시선은 아닐까? 종교와 도박의 유사성을 보는 과정중에 종교의 단점만 부각되는것과 같은 느낌이 있어서 조금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인간은 불안과 안정 사이를 계속해서 서로 욕망하는것은 아닐까. 물론 도시와 시골 모두를 경험하며 '이상'과 같이 어느정도 도시생활에 중독된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논리적으로 전혀 안정적이지 않은 것들이 존재한다. 도시 속에서 마약과 술을 찾기도 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기도 하며 보트와 자동차 비행기로 엄청난 속도 경쟁을 하기도 한다. 자본주의로 인해서 계층간의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는것도 사실이지만 작가의 말대로 자본주의가 유입되지 않았다면 종교와 도박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과연 종교가 계층적인 구조에서 아편과 같은 진통제로 존재하는가? 상류층은 왜 종교를갖는가? 이용하는것일 뿐일까? 티벳과 같은 종교는 과연 자본주의와 멀어져서 존재하는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종교는 자기성찰이라는 부분에 관련되어선 철학과도 유사성을 지닌다. 자본주의적으로만 정치적으로만 유사성을 지닌 부분에 대해 말한것은아닐까?

 

매춘과 관련된 부분. 과연 매춘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만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책에선 그녀들에게 선택권이 없고 어쩔 수 없이 돈을 위해서 매춘을 한다고 한다. 남성은 사랑을 얻기 위해 돈을 주고 그녀(혹은그,책에서 매춘의 구매자는 남성위주)의 성을 구매하지만 철저하게 이는 자본주의적인 관계라고 말한다. 남성은 사랑을 얻으려고 하지만 사실상 상대방은 남자가 가진 돈을 원할뿐이고 이때문에 양심적인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더불어 매춘부가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며 그녀의 삶이 망가지기 시작한다고 하며 이와 관련된 소설을 인용하기도 한다. 과연 경제적인 관계일뿐일까?

 매춘이라는것에서 남녀모두 구매자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매춘부가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매춘을 선택하는듯 하기도 하다. (책에 소개된 부분에선 1년중 특정기간동안 매춘행위가 극도로 올라가는데, 이는 성인이 되는 일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꾸미기 위해서 매춘을 선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우리나라에서도 돈을 벌기위해 여대생이 성매매를 선택하는것이 뉴스화되기도 한다) 그 관계속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 채 진행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사랑에 빠진 매춘부라는 존재는 무엇이 되는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불가능한것이 아닐까? 돈만 오가는 경제적 관계라면 어떻게 그 사이에서 감정이 오고가는가. 매춘이라는 행위 이전에 성관계라는 것이 비단 경제적인 부분만 존재하는것이 아닌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부분이 존재하기에 소위 '원나잇'이라는 것 속에서도 사랑을 속삭이며 둘만의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경제적인 부분만 강조된 매춘에 대한 시선은 납치와 협박과 같은 강제적 성매매와 비슷한 시선은 아닐까. 노동자의 노동과 매춘부의 매춘을 동일시한 마르크스적인 시선이며 실제 매춘분들이 경험하는 성적인 감정과 남성위주의 사회적인 관계에 대해선 배제한 부분이 보인다. 매춘뿐 아니라 패미니스트적인 시선을 고려한다면 현재 존재하는 결혼제도와 경제적인 입장을 고려했을때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의 영향도 분명히 존재하는것이 아닐까 싶다. 꼭 남녀평등을 주장하는것은 아니다. 인류 초기에 사냥을 하며 권위적이었던 남성성을 고려하면 단순히 동물과 같은 본능적인 측면에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것에는 오류가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매춘 역시 남성위주의 사회 ( 매춘이 시작된 시기도 대부분 경제적인 부를 지닌건 남성아니었을까? 과거나 현재 주된 수요는 남성일까? 사회적변화로 남성역시 매춘을 한다. 직접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부를 지닌 여성이 마주하는 남성. 매장에서 구두를 신고 벗기는 남성.아니 이미 정치사회적으로도 남성매춘의 수요는 있다.) 에서 시작되었으며 현재 변한 사회적 위치와 (매춘이 꼭 홍등가를 말하는것은 아니다.) 산업적인 측면도 같이 고려되야하는것은 아닐까.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인터뷰라도 해보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후반부에 이르는 내용을 읽긴 했지만 집중도 못하고 제대로 이해도 되질 않았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상업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 구매자와 판매자 생산자와 자본가와 노동자. 그리고 그들이 어떤 관계를 이루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특정하게 제어함에 따라서 자본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득을 벌이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단순 비판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그 책들을 읽고 성찰하라는 의미에 조금 더 가까운 듯 하다.

하지만 상당량의 의견과 생각을 독자에게 양도한 턱에 책 자체적으로는 저자의 의견이 조금 적은듯하다. 그러니까 시와 소설등으로 그 작가들이 산업자본주의가 유입되던 시절 느끼고 생각하던 자본과 소비자와 여러가지 장치에 대해 통찰하고 비판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알기 쉽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풀어주지만 그만큼 독자는 이 책의 저자에게 소설과 시에 대한 해석을 맡길 수 밖에 없고 ( 그 작품들을 미리 접했다면 다를수도 있다.) 그로 인해 타인의 생각인 만큼 넓은 시선으로 자본주의를 바라보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느낌이다. 책이란것 자체가 한 사람의 생각을 문자를 통해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어느정도 해석의 여유를 양도했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경우 소개된 저서를 아직 접해본적이 없기에 그 저자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다른 이면에 대해서는 알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본주의를 비판해나가는 일정한 과정속에서 이 책의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견 역시 인문학작품들을 설명하거나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료 소개된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로 인해 작가고유의 의견은 단지 작품들을 연결해주는 고리역할로 축소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것은 '상처받지 않을 권리'라는 책 안에 소개된 작품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책장이 넘어가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고전작가들의 생각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한 충격이 큰 탓인지 작가의 의견이 축소되어 보이는 듯한 느낌일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비판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기에 바쁜 근거없는 책들과는 다르게도 작품들을 소개하는 부분에 있어 독자의 선택에 의해 새로운 기회를 준 여지에 대해선 좋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유입되기 이전부터 시작되는 시점과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된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현재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영향으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가는가에 대한 흐름을 소개해 주어 좋았다. 특히나 단순히 감성적.감정적인 부분만 요구하며 근거없이 감정적인 동질감만을 자극하는 그저 한시적인 것들과는 다르게 제도적인 부분. 이를테면 어떻게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이 구매자를 자극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가진 화폐를 유통시키는지. 또 그런 자극에서 성적인 자극과 감각적인 부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리고 왜 그들이 끝 없이 상품을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가진 물건들이 단지 옛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지적이 꽤 재미있었다. 특히 후반부에 등장하는 작품들중에 유명한 여배우가 성적어필을 가득 담은채 스크린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어떤 상품을 생각한다고 하는 부분은 사실상 현재에도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보곤 놀랄수밖에 없었다. 각종 매체. 티브이와 라디오 스마트폰의 광고와 셀 수 조차 없는 자극들을 받아들이는 요즘에 그것들이 대단하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하기 쉽다. 멋진 자동차와 음료수 가전제품들과 대기업의 광고를 보면서 아름다운 부분을 보고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들은 사실 개인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졌을 뿐이라는 것.

각종 매체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저도 이젠 끝없이 뭔가를 소비할 것을 재촉한다. 심지어 그들이 가진 어떤 물건이 상품적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옛것. 지나버려서 버려야 할 것.들로 분류되고 감당할 수 조차 없는 소비를 하면서 또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자신을 몰고가는 모습을 보면 의문이 사라지질 않는다.이제는 시간이 꽤 지나버린 탓인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굉장히 많은 제도적 장치로 인해 선택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면 정말이지 무섭다.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지닌 상징. 나는 타인과 다르다는 인식이, 인간의 허영이 어떻게 산업에 이용되고 있는지. 아무생각없이 패션은 멋지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뉴스와 인터넷에 도배되는 것이 단지 개인의 인격과 정체성을 넘어 거대한 자본과 맞물린다는 것이 소름이 끼친다.

단순히 소설과 시에 대한 감성적 동조감을 떠나서 시장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발전하는데에 경제적인 구조에 관한 이해가 필수불가결인것을 알게된다. 과잉생산을 폐기하지 못했기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의견이 좀 무시무시하긴 하고 의문이 생기긴 하는데, 과잉생산된 재화를 판매하는것이 아닌 폐기하는 것으로 경제가 유지된다는 의견을 보면 과연 경제라는 개념이 그렇게 완벽하고 안정적인가라는 것이 대해 의문이 생긴다. (사실상 그 부분에서 빈부격차가 생길 수 밖에 없는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책을 읽은 후에도 여러가지 의문들이 생기는데 책이 완벽하게 해결책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저자의 방식대로 그것들을 통찰하고 비판하는 과정속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타입에 가까워 궁금한것들은 추후에 하나둘씩 찾아봐야겠다.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 계속해서 의문을 던지는 방식같아서 생각은 많이하게 되는데 책 자체가 이해되거나 하진 않는다. 동조할 수 없는 부분도 꽤 있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종류와는 다른 책이다. 사회학과 경제학과 문학에 대한 감칠맛나는 자극을 주는 책. 과거에 고전을 통해 꽤 특이하고 재밌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구나 !

 

 

 

 

p.s)

 

 

패스트 패션-

얼마전 소개된 다큐멘터리에서 보게 된 내용인데, 유행이라고 안착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징적인 가치는 사라지고 지나간 패션의 재화로만 남겨져 버려지는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그것들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환경오염. 특히 수질오염에서 극단적인 수치가 기록되고 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소비가 이루어지는 부분 속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허영과 자존감의 회복을 소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그것이 인식조차 하기 힘들정도로 비정상적으로 교체되고 있다. 단지 상품중에서 그것의 의미를 지니는 '옷'의 가치가 최소화되고 '상징'을 소비하는 부분만 비약적으로 증가된 듯 한데 앞으로 사라지게 될 것인지 이와 같은 형태로 변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경제가 힘들다고 소비심리가 위축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빈부격차가 심해져서 저소득속에 있는 노동자에 한정된 이야기로 보인다. 현재 뉴스에서 말하는 경제난과는 다르게 상류층의 소비와 부의 축적은 그닥 낮아진걸로 보이진 않는다. ( 이상하게도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은 서민계층과 소수의 중산층계층만을 보여준다. ) \

한가지 의문인것은 패션이라고 하는것이 상류층과 서민-중산층으로 분류가 된 듯 하다는 것이다. 패션이 상류층에서 중산층의 흐름을 보인다고 이야기했는데 ( 중류층이 상류층의 패션을 따라하게 되면서 그 패션은 상류층에서 사라지게 되는 방식을 지적하고 있다. ) 저가제품으로 빠른 회전을 주도하는 방식이라면 기존의 흐름에서 분리된 듯한 느낌을 준다. 소비하고자 하는 허영은 자극하지만 독자적인 문화를 생성하려는 흐름이 특이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좁으며 자본가의 선택에 강요될 수 밖에 없다.

 

매춘-

매춘에 관하여 경제적인 부분에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이것이 단순히 성이 상품화된 부분을 제외하고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적사회에 대해서 비판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수렵사회에서 부터 사냥을 하면서 주된 권력을 차지하는 부분은 남성중심이 아니었을까? 남성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지만 일부다처제는 알려져도 일처다부제는 소수로 알고있다. 단순히 사냥이 아니라 경제적인 발전이 주로 이루어진 시기에 육체적인 노동에 강했던 남성들이 주로 일터로 나가 일을 하면서 임금을 벌어온 상황속에서 부의 주체는 남성이 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노동현장에서 주로 남성이 집중된 탓에 일터라는 공간 자체가 남성위주로 세워졌고 흔히 보는 회사 역시 대부분 남성으로 채워져 있다. 소비사회에서 화폐를 지닌 사람이 경제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게 될텐데, 주로 남성위주로 살아가던 가정 역시 주된 부가 남성에게 집중되고 노동 역시 남성에게 집중된것은 아닐까? 과연 이 상황 속에서 남녀의 권리가 평등한것이 가능하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흔히들 남자는 자본을 가진것이 힘이고 여성은 아름다움이 힘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이것이 차별적이고 한시적이고 표면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저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현대에선 이것이 부각되기도 하고 반대되기도 한다. 여자를 외모로 판단하느냐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돈으로 남자를 판단하는것은 굉장히 퍼져있지 않은가. 소수의 이야기고 변화하고 있다고 해도 옷차림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분을 판단하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일이다. ( 이에는 굉장히 많은 실험이 있다. ) 이에 관해 거부감을 지니는 의견도 많지만 성적 매력을 상품화하는것은 TV만 봐도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흔하게 보는 드라마와 광고에도 등장한다. 저자가 말하듯 백화점에서 쇼윈도에 비치는 남녀역시 성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성상품화라는 부분이 매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이미 굉장히 많이 퍼져있다는 점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성매매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것들.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권력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성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과연 매춘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일까? 과연 시각적인 자극이 통념되는 사회에서 꼭 돈이 오고 가야 매춘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선택과는 상관없이 매춘업에 종사하게 되는 여성들과, 돈을 벌어서 생계유지를 위해서 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 혹은 단순히 돈을 위해서 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과연 확고히 구분지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 책에 소개된 대로 졸업시즌즈음에 급격히 증가하는 매춘에 대해서는 과연 어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을 단순히 수요와 공급으로 구분지을것이 아니라 왜 공공연하게 이루어 지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매춘이라고? 말도 안돼. 아냐 그건 없어. 잘못됐어"라고 말하는건 별로라고 생각한다. 경계가 굉장히 모호하다. 꼭 상징적으로 상품화되었다 라고 비판할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속에서도 당연시 되는것들도 함께 지적되어야 한다.

책에서 걸렸던 것도 그부분이다. 단순히 매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관해 경제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노동자로만 바라보는 것이 조금 한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사진으로 담아내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공개하는 사진들도 과거부터 꽤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음성변조를 하면서 왜곡된 사실을 전파하는것이 그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보다 더 나쁜것이 아니겠는가? 보수적인 나라의 인식덕분에 그것들은 금지되어야 하고 피해져야 하며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척하고 있다니 묘한 일이다. 게다가 무언가를 금지하는 과정덕분에 금기시된 것에 대한 욕망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다. ( 책 속에 이에 대해서 '에로티즘'에 관한 발생을 설명한다. 저자가 아니라 인용문이다. ) 뭐든 금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할까? 사실상 그들이 그런 사회문제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이 맑고 깨끗하고 사람들이 정말 올바르고 획일화된 로봇과 같은 개념이라면 그런 문제들이 생겨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회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인식하고 해결해야하는데 일부는 그것을 인정조차 안하고 부정만 한다니 해결될 일이 만무하지 않은가.

성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굉장히 다양하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왜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롤리타는 왜 화제가 되었는지. 영화와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SM플레이는 왜 생겨났는지. 생크림의 비화는 무엇인지. 문제는 개방적이아니라 너무 폐쇄적이라는 것. 아마도 알면서 모른척하는 공공연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