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 - 이방인

푸른세계_2 2015. 10. 15. 15:49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엄마가 죽은 장례식장에 찾아가며 피로를 느끼는 까뮈는 그곳에서 문지기와 담배를 마주 피며 커피를 마시고

그녀를 찾아온 노인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그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고 그곳에서 나온 뒤 전 직장동료였던 마리와 수영을 하며 사랑을 나눈다.

자신이 살고 있던 건물에서 살라마노 영감이 개와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와 이야기하기도 하고

옆집에서 여자와 싸우던 레몽과 가까워지다 그의 동료들이 모이던 곳으로 마리와 함께 여행을 간다.

레몽의 전 애인의 오빠였던 사람이 아랍인을 통해 그들을 죽이려고 하다 도망가 버린뒤

뫼르소는 이유없는 걸음을 하곤 그 자리로 돌아가 누워있던 아랍인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그리곤 뫼르소는 감옥에 갇힌 뒤 재판을 받고는 신부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재판을 받는 모습에서 분노에 치를 떨게 됐다.

세상에 알려지는 수 많은 사건중 소설에서 등장하는 뫼르소의 행동이 사이코패스적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분명 극적인 부분에서 광기를 보여주는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것처럼 강렬한 장면이 교차되는듯한 느낌을 주는데

소설 전체의 차분하고 우울한 색깔에서 유일하게 강렬한 붉은색을 나타내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가 자신들을 위협하던 아랍인들을 죽인것에 대해 재판을 받을 때

생판 알지도 못하는 검사는 사건에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의견과 생각을 무참하게 배심원에게 주입시키는 것도 모자라

뫼르소가 엄마의 죽음에 대해 눈물 한방울 흘리지 못한 정신가간 살인마라는 타이틀을 주도면밀하게 잡아넣는것.

그리고 아주 건조하고 인위적으로 판사는 그런 모든 의견을 차단하지도 않고 타인의 삶을 무참히 밟는것에 대해

그 누구도 망설임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다. 왜 다른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법적으로 옮고 그른것을 판단하며

그를 윤리적으로나 병리학적으로 멋대로 판단하고 비판하는지.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그토록 날을 세우며 마치 그사람이 인류에 커다란 재앙이라도 되는듯이

갈기갈기 찢다못해 완전히 사건과 별개로 분리되도록 느끼게 만드는 것인지.

하지만 한편으로 그저 아무 생각없이 자극적인 사건들을 마음대로 조합해서 보도하는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감정적으로 타인을 비난하며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아본적도 없고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

타인을 죽이고도 그것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그것만을 반복해나가는 현재를 본다면

과연 까뮈가 바라보던 부조리한 세상이 소설속에나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죽음에 이르러 엄마의 존재와 삶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는 모습이 특이했다.

그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감정의 자유는 그만의 것이 아닐까. 이해를 하든 하지 못하든

가족. 그 자신의 기억과 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아들인 뫼르소의 것이 아닐까.

신부의 멱살을 잡고 토해내던 그의 말들에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장 폭발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살라마노 영감과 그의 개가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모습.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개와 그 개와 닮은 주인.

자신의 일이라고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 미친사람처럼 달려드는 요즘 세상에 이토록 삶에 대해 솔직한 모습이

얼마나 있을까. 세상엔 아름다움만 있는것이 아닌데. 그저 예쁘고 자극적이고 이상한 기준에 목메는 세상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