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 허버트 조지 웰스

푸른세계_2 2016. 4. 4. 11:22

생각하면 할수록, 춥고 더러운 날씨와 북적거리는 문명사회의 도시에서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부자유스럽고 어리석은 짓인지를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네.

 

 

 

 

소설의 시작은 이미 투명인간이 된 주인공을 일기 형식과 3인칭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점이 섞여 진행된다.

물리학과 의학을 공부하던 주인공 그리핀은 조용한 한 마을에 병과 집기가 가득 들어찬 짐과 함께 음침하게 등장한다.

붕대와 모자, 깊은 푸른색의 안경으로 자신을 꽁꽁 싸매며 사람들로 하여감 기분나쁜 느낌을 자아내는 그는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잦은 욕설과 중얼거림과 함께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광폭한 성격을 보여주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려고 할때면 언제나 말을 끊어버린다.

그러던 그가 금전적인 이유와 도둑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드러내게 되면서 이내 쫒기는 신세가 된다. 마을을 맨몸으로 떠돌아다니는 '목소리'는 자신의 물건을 찾으며 이들에게 복수할 계획을 꿈꾸게 된다.

 

이승열의 영미 문학관을 통해 알게된 세계 호러 단편 100선을 계기로 공포문학에 대해 조금 흥미를 갖게 됐다.

브램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읽게 된 계기도 여기에 소개된 그의 단편작 <스쿼> 때문인데, 굉장히 짧은 글인데도 불구하고

듣는 (혹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떻게 심장을 옥죄게 만드는지 정말 너무나 잘 아는듯한 느낌을 받아 시간이 갈수록

그 공포감은 배가 되어 어둡고 음침하고 습하며 그 안에서 어떤 생물을 미지의 영역으로 끌어 당겨버리는 그 소름끼치는 느낌이 정말 인상깊고 쉽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느낌이다.

 

 

특히 이런 방식의 소설과, 고전 소설중 까뮈의 '이방인'이 주는 고전적인 느낌을 좋아한다.

조금은 딱딱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글씨에 이끼가 가뜩긴듯이 축축하고 무거우며 전체적인 문장이 단단한 성벽의 바위처럼 느껴지는 느낌.

시간이 지나면서 겉을 싸고있던 껍질들을 조금씩 벗겨내 오랫동안 잠들었던 무언가를 덮는 헝겁을 걷어낸듯한 그런 분위기.

 

이번 책 투명인간은 그런 느낌과는 미세하게 거리가 있다.

조금은 현대적이고 가벼운 느낌과 밀도가 조금 더 낮은듯한 방식이랄까?

주인공이 투명인간이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해선 중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그런 미스테리를 감춰둔채로 초기에 전개되는 부분이 꽤 스릴있다. 독자도 주인공에 대해 어렴풋하게 짐작만 할뿐, 작가가 쓴 글을 볼때에 그 공포와 신비로움으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를 둔 탓에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사건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할 수 있지만 주인공 '그리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오직 그 뿐이다.

 

SF장르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초인적인 능력에 대한 집착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넘치는 힘과 훼손되지 않는 신체, 투명해지거나 날아다니며 타인의 마음을 읽고 심리를 조종하기까지.

그 중 투명인간이라는 존재는 특이하게도 신체적으로 강한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히어로들(?)사이를 언제나 지키고 있다. 복잡한 인간사회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과 상대의 숨겨진 모습을 보고 싶은 관음증적인 태도가 섞인것이 아닐까 ?

 

하지만 투명인간이 된 그는 불안과 공포에 떠는 수 많은 '타인'들 덕분에 밟히고 찟기고 심지어 얻어맞으면서 총세례까지 받는다. 그가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인탓도 있지만 아마 그가 타인과 '다른'누군가. 소수자 이기 때문은 아닐까 ? 굳이 그가 투명인간이 아니더라도 돌연변이이거나 남들과 다른 사회성을 지녔거나, 혹은 그저 다른 '성별' 혹은 다른 '인종', '출신'등 자신들이 이루는 집단과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구별될때 사람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는 짓을 서슴치 않는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이야기되는 것중 하나는 집단에서 자신의 편을 알아야 하기에 '뒷담화'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인간의 이런 특성을 보면 언제든 다른 누군가를 배척하는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되곤 한다. 게다가 최근에도 꾸준히 보여지기도 하니.

 

그를 <그리핀>으로 기억했던(?) 그의 친구가 다시 <목소리>를 공격하려 했던건 어쩌면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 두각을 나타낸 그에 대한 열등감이나 공포가 아니었을까? 자기중심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폭력적인 독재를 꿈꾼다고 하는 그의 말에 완벽한 의심을 품을 수는 없지만 <그리핀>이 왜 <목소리>가 되어 가는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했던 사람은 오직 독자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며 작가가 <그리핀>이 <목소리>가 되어 가는 과정에 대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책의 중 후반부를 대부분 차지하며 과학적인 지식을 섞어가며 <그리핀>이 지닌 과학적 성과에 대한 열망고 집착들.

당시 과학계에서 인정받으려면 통과해야했던 악습과도 같은 관행. 궁지에 몰린 그가 해야했던 어쩔 수 없는 선택들.

그리고 그가 현재까지도 그를 몰아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환경. 그가 고양이를 상대로 실험하면서 보여준 인간의 무서운 욕망을 마주하는 순간에 이르러 이 책이 진짜 공포소설이 맞구나 라는걸 알게된다.

대중을 포함하는 사람들에 대한 어리석음을 보여주며 인간의 욕망과 파괴적인 행동들에 대해 비판을 담아낸 이야기.

고전은 언제나 허무하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