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푸른세계_2 2016. 9. 21. 11:03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다. 이벤트로 ! 잇힝 !  하지만 철저하게 제멋대로 주관적인 느낀점을 바탕으로 기술됨.

 

제목을 본다. 뭐랄까.  조금은 자기계발서의 은근한 향내가 느껴진다. 마치 서점에 들어선채로 입구에 가깝게 배치된 도서들.

이를테면 '나는 왜 ~할까?' '~공부 지금시작해라 !' '~하는 연습' 등등 무채색과 단색의 배경. 그리고 진득한 폰트의 글씨.

이제는 그런 도서들의 의도에 연민마저 느껴진다.

 

크기. 굉장히 작다. 거의 문고본 사이즈다. 두께도 꽤 얇은 편이다.

처음보고 '어? 생각보다 작네' 라고 느껴졌다. 도서를 본 지인인 '그런건 몇시간이면 다 보지 않아?'라고 말한다. 니가 읽어봐라.

 

 읽어가면 갈수록 흔하도록 사회적 문제와 자본주의의 굴레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기 바쁜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마르크스와 경제학을 적당히 섞고 '인문학'이란 단어를 소금뿌리듯 털어내는 사회학책들도 아니다.

그리고 통계와 그래프를 섞고 '이런 사례가 있다'면서 독자를 자신의 이론으로 범벅하길 원하는 심리학서적도 아니다.

뭐 저런 구성들이 골고루 섞여있긴 하지만 그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느낌이라면 슬라예보 지젝같은 할배가 하는 강연을 길게 듣는 것에 가깝다.)

 

​비교적 간단한게 본다면 사람들이 어떤 환경변화속에서 살아왔고 그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얻고 잃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매체에 노출되고 어떤 가치관을 지니게 되고 또 그것이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

전체적인 사회구조에서, 그리고 한 개개인의 심리와 정신분석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느냐 마느냐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대하고, 또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그것을 무시하고, 혹자는 그것을 마주하느냐

정작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마주하게 되는 내용이다.

 

도서시장에서 많은 점유를 보이는

당신은~ 타입. -> 정신상담을 받으시오.

사회심리학. 우리 사회가 이런건 이런 집단 심리 -> 상담을 받으시오

자본주의 사회. 나는 힘들게 자라서 그 안에서 돈을 보았고 -> 당신탓이니 돈을 버시오

(남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겠지만)세상의 통계와 수치들은 이런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에 -> 어쩔 수 없다. 다른 심리책을 사시오.

 

와 같은 류의 도서와는 조금 다르다.

 

여러분야가 섞여있기 때문에 아니 왜 얘기가 그리로가 내 얘기는 그게 아닌ㄷ..같은 느낌도 조금은 있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여건과 맞춰보고 자기비판을 하기에 괜찮은 책 같다.

단, 나무 줄기와 같은 책이기에 더 깊은 지식이나 정보를 원한다면 이에 맞는 도서를 읽어보는것도 좋겠다.

​(물론 형편없는 베스트셀러는 제외하고)

 

 

 

저자의 의견에 동조한다면 이것은 내 생각이 아닌 저자로부터 온 지식에 불과할수도 있다. 대채적 흐름은

 

인간이 초기에 단순하게 살아온 뒤에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덕분에 기존에는 없던 자본이득이 등장한다.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자본가와 동일해질것이라는 예견은 무너졌고 인간들은 하나의 부속품. 즉 사물로 대변된다.

개인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사물로 대변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사용하면서 점점 개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람들과의 소통은 점점 미미해지고 단순화되며 그 사회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은 두려움의 원인이 된다.

 

타인과 같아지려는 욕망. 그리고 익명성의 가속화. 그러나 그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혼란.

개인은 어떤 '집단'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기 위해 타인들이 원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하게 되며

그와 동시에 자신만의 정체성 ( 자아 ) 를 스스로 망각해버린다. 정신분석을 의뢰하고 주변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과시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할뿐 정작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과 노력은 하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각 속에 갇히게 되었나. 왜 나는 타인들의 생각에 맞추려고 하며 허락을 구하려고만 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에 너무 익숙해진채 세상의 소통을 대신하는 매스미디어를 맹신하게 되며 자기 자신의 생각인지

다른 매체가 나에게 심어놓은 생각인지조차 구분하려 애쓰지 않으며 스스로 노예의 삶을 선택해버렸다.

 

그러니 당신의 삶에 주도권을 잡으려면 무엇보다 집단과 자신을 구분하고 진정으로 자기비판을 하며 자신의 개성을

존중하고 안전을 포기할정도의 용기를 지녀야한다고 말한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고  '보는것'과 '보는 것'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고.

 

강신주의 감정수업처럼 많은 도서가 등장하는것은 아니지만(그만큼 친절하지도 않다) 마르크스를 비롯해 사르트르와 마르틴 하이데거, 안토니오 마차도.스피노자의 에티카 . 애덤스미스등 사회학,경제학, 철학, 자연과학....?(은 없는듯)심리학등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참고한다.

개인적으론 주체가 되지 못한 삶에대해 공감을 많이 하게 됐다. 스포츠와 술 영화등 오락거리가 주는 쾌락과 스리를 마치 자신의 삶에서도

일어나는듯한 착각을 가지고 진정한 삶의 환희와 떨림등을 외면한 태도.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자기검열등.

뭐 결론적으론, 여기에 등장한 도서들을 한번씩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분석학과 도스토 예프스키의 도서는 특히.)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보단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해서 생각보단 재밌었다. 꽤 도움도 됐고.

아마 더 두껍고 굉장(?)했다면 던져버려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합리화를 끝없이 되풀이하는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분별할만한 뛰어난 자아가 부족하다는걸 아쉽게 생각한다.

 

 

 

P.S1)

더불어 꽤 오랜시간전에 씌여졌다는것을 의식하게된다.

산업혁명이후 이에 관련된 여러 책들이나 프랑스, 러시아의 영화들 ( 망명을 선택한 일부 미국영화를 포함해 ) 은 당시 기계화된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의 단순한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프로파간다적인 작품들을 꽤 많이 등장시켰는데 그와 꽤 비슷한 향내가 느껴진다. 그에 비해 꽤 많은 시간이 흘러 한국이란 나라는 인터넷으로 엄청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토록 매스미디어와 이념적(연령과 정치성향. 성별,지역감정을 포함해)인 갈등이 심한걸까 의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게다가 현대에 익명성이 강조된 인터넷 커뮤니티 ( 물론 실명제를 하는 머저리같은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 가 등장하면서 새로워진 인간관계의 형태변화들은 조금더 다양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SNS를 폭발적으로 이용하고 이에 중독된 형태를 보면 타인과 같아지려는 욕망과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이 결합된 양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남들이 먹은건 먹고, 입은건 입는 심리는 상대적인 빈곤을 축소시키려는것인지 혹은 경쟁에 익숙해진 사회에서 뒤쳐져선 안된다는 강박때문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트렌드가 변하는 속도가 빠르니 형태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 안에서도 틀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집단을 벗어나려는 두려움이란 틀을 전체적으로 적용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P.S2)

지식은 쬐끔 부럽다.

 

 

P.S3)

근데 읽고나서 딱히 기억나는게 없다. 딴생각을 많이해서 그런가 ?  이걸 읽고 스케이트보드를 못타게됐다. 기분탓일까 ?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익스트림스포츠와 같은 분야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건 그저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삶에서 그런것들은 취미일뿐이라는 생각때문인지, 혹은 그정도의 기쁨만을 주기 때문인지 정작 중요한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230108)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천잰가? 

저 많은걸 어떻게 정리했지? 또 저 사이에서 보이는 유머와 재치는? 세상에. 좋잖아?

시간이 지날수록 뇌가 줄어드나. 너무 영화보고 잡생각에 빠져사나..?

에리히 프롬은 의식하기에 좋다. 그 의식이 사진이든 영화든 다른걸로 이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