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영화 리뷰

증인

푸른세계_2 2019. 2. 26. 20:30

과거 권력과 맞서 싸우던 변호사 순호는 대형 로펌에 들어간다. 자신의 이미지를 사용해 대중에게 안좋은 평가를 받는 로펌을 위해 일하고 로펌으로부터 고급차와 구두를 선물 받는다. 그렇게 변해버린 그의 동료 수인(네이X에선 송윤아는 배우에 등록조차 안돼있다 ㄷㄷ )은 그를 멀리하게 된다. 

 살인사건의 현장을 목격한 자폐증상의 중학생 임지우는 편견이 가득한 세상속에서 증인이 될수 있을까. 

라는 영화.

영화 자체는 따듯하다. 자폐를 지닌 이에 대한 편견에 맞서 어린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려 변호사가 다시금 정의(?)를 위해 싸운다니깐.

그러나 정우성이라는 이미지에 기댄건지 변호사라는 이미지보단 정우성이라는 배우가 더 잘 보였다. 자폐아라는 이미지도 다른 영화에서썻을법한 흐름을 다르지 않게 가져왔고, 굉장히 드문 경우인 천재성을 보여주는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케릭터를 가져오면서 관객들에게 서번트중후군이나 천재성을 지니지 않은 자폐증세를 보이는 이들은 어떻게 인식될까에 대해 질문할 기회를 흘려보내버렸다.

영화를 보기전 수인과의 로맨스를 왜 넣은지 이해가 안됐다는 평이 있었는데 정말 그렇다. 그녀의 케릭터는 권력에 맞서 싸우던 이상적인 순호와의 동기로 그가 지녔던 순수함의 상징정도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녀 혼자 대형로펌에 맞서 싸우며 소수를 위한 목소리를 내지만 그외에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세한 묘사가 없다. 그저 변해버린 순호에게있어서 자신이지녔고 잊어서는 안될 (선택에 다라 잊을 수 있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한것인가. 게다가 이 지긋지긋한 로맨스. 꼭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건 관객인지 감독인지 알 수가 없다. 

김향기 라는 배우는 좋았다. 눈길이라는 영화에서 김새론 배우와 같이 나오는것을 보고 굉장히 인상이 깊었다.  장애인 연기는 수 많은 영화에서 어색한 경우가 많은데 배우의 이미지 때문인지 연기 때문인지 케릭터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김향기가 아니었다면, 현실에 살아가는 자폐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김향이와 같은 외모를 지니지 않았거나 서번트 중후군이 없다면 어떨까 싶었다. 


이상한 기분이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선 진부한 스토리덕택에 장애를 지닌 이들을 그저 문화적으로 소비한다고 보여진다. 

어릴적부터 장애를 지닌 이들이나 환자들을 곳곳에서 마주한적이 있지만,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기억은 없다. 잘 알지 못하기에,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모르는 부분에 있어 두려움마저도 있다. 학교를 다닐적엔 장애를 지닌 사람을 거의 본 기억이 없다. 대학교마저도.  

영화는 무슨 교훈을 주려고 한건가 ? 할 수 있는거라곤 옳은편에 서서 싸워야한다는 점 뿐인가 싶다. 



p.s) 스포에 관련된내용_

영화전개중 이해가 안되는 답답한 부분이 있다.


자폐스펙트럼을 보이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감정을 읽을 수 없다는 소개가 나온다.

때문에 지우라는 케릭터는 그녀의 엄마가 표정을 지으며 찍은 사진을 보고 감정을 학습한다.

그런데 지우가 극중 표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엄마는 화내는 표정이지만 자신을 사랑한다고. 혹자는 웃지만 행복한것이 아니라고.

이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표정을 일부러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그런데 재판중 이모티콘을 프레젠테이션으로 보여주며 이것은 웃는 표정인가요? 우는 표정인가요? 라는 뉘앙스로 웃는 입과 우는 눈을 섞은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지우는 웃는 표정이라고말한다.

과연 그 표정을 바탕으로 감정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재판장안에 있을까 ? 


사람의 표정은 진짜가 아니라 라는 기존의 이야기가 감성적인 해석에 불과하다고 해도 ( 사회과학에서는 마스크에 관련된 심리 해석이 있을수있다 ) 이모티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논리. _ 눈과 입이 웃으면 웃는것이고 눈과 입이 쳐져있으면 우는것이다_ 라는 것은 주관적이고도 모호한 성격을 지닌다. 슬퍼하거나 기뻐하는것이 아닌 웃고있는가 울고 있는가 라는 시각적인 사실을 말하는것으로도 충분히 오류가 있을수 있다.

일례로 손택의 저서 중에는 약 1000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을 받은 사람의 사진이 찍혀있는데 , 그의 표정을 말할때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 아닌 활짝 핀 형태라고 설명된다. 마치 그 고통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 그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이기에 그렇다고 해석될 수 있지만 그것은 해석.) 그럼 그 표정은 단순히 웃는것이라고말할 수 있나 ?


대상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편견 / 대상을 해석했다는 편견 / 


지우는 살인자가 웃고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객관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행복하다는 주관적 해석이 아니다. 그럼에도 재판장에서는 대상이 웃고있었다는 증언을 배제한 채 감정을 해석할 능력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는 능력과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할 수 있냐는 과학적 주장이 뒤섞여 있다. 


그런데 어째서 엉성한 주장을 그렇게 통과시킬 수 있는건가싶다. 


대상의 표정을 먼저 해석한 다음에 설명한다는 변호사측의 논리와 / 실제 지우가 표정을 설명하는 것에는 약간의 괴리가 있다. 

표정을 설명하는데 ( 웃거나 우는데 ) 그사람의 감정을 꼭 해석해야 하는가, 감정과 표정이 보이는 것이 일치해야만 설명이 가능한가 하는점이다.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은 과학에 기반한 현상의 설명일뿐이지 (그것이 사실이라고해도) 실제 웃는것인지 아닌지는 설명과 분리해야 한다. 차라리 그림이라도 그려보라고 하던가. 실제 재판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면 참.....

편견만 조장하면 실제 사건과 관련이 없어도되는건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