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푸른세계_2 2020. 6. 29. 23:00

 맨 부커상 때문에 알게 됐고 그때 굉장히 유명했던 책 중 하나.

문학사 같은건 잘 모르고 문학의 구조나 흐름을 모르니 지금 책이 주는 느낌이나 의미는 잘 모르겠다.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나 서양 고전문학에 비해 읽는 속도가 굉장히 빠를 정도로 흐름이 부드러웠다. 전개도 빠르고.

그러나 중반부에서부터는 조금 지루해지는 느낌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책을 덮기가 쉽지 않았다.

 

현실 속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허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은 픽션의 힘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저마다 다르다. 이번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런 허구는 아니었다. 정작 주인공의 생각이나 말에 대해선 조금도 설명이 없었다. 그녀의 증상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도화선에 붙은 불이었다. 그저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던 그녀의 남편은 큰 트러블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내를 마주한다. 꿈이 두려워서 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고.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그녀를 설득할 수 없었고 친인척들 사이에서 그녀를 밀어붙이게 된다. 그녀의 언니는 마치 시들어가는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지만 언니 역시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우연스럽게 만났던 그 남자에게 이끌려 밥을 먹고 결혼했다. 예술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달라질줄 알았지만 형부가 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만든 작품도 이해할 수 없었고 작업에 푹 빠져서 집안을 내팽개친 그 남자를 거의 포기상태에 가깝게 느낀다. 그런 언니의 남편 역시 언니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였지만 뭔가 부족한 것을 동생인 그녀를 만나면서 알게 됐다. 예술에 대한 (혹은 그저 욕망에 불과한) 갈망을 처제를 보고 나서야 느끼게 됐다. 이런 모든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저마다 하나씩 나쁘지 않은 관계와 삶을 살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못한채 뭔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본인에게 없고 타인을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태. 책을 보면서 각 캐릭터들이 서술될 때 정말 진창에 허우적대는 느낌이 들었지만 누구 하나씩은 묘하게도 이해가 되는 그런 끌림이 있었다.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데 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결혼이란 것에 의문이 든다.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고 살아간다는 걸까.

 

그러나 당장에도 실제 삶에서역시 나는 곁 혹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내비치는 경우도 드물고 그렇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불확실성과 모호한 선택과 수많은 선택들이 모든 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삶을, 나를 이해할 수 조차 없다. 그래서 자꾸만 정답이 있는지 찾으려고 해 본다. 어쩌면 그런 선택들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지. 근데 그 선택의 책임을 당사자가 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렇게 너무 불필요할 정도로 가까이에 관계가 너무나도 피곤할 정도로 많다.

 

_ 형부의 욕망이 예술( 그것이 순수한것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는 처제가 갖게 될 관계에 대해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점과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자기 합리화.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꽃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광기에 사로 잡혀 있었고 마지막엔 자신만을 위한 십여분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가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추천수를 받기 바쁜 누드사진과 다르게 스티글리츠나 랄프 깁슨 메이플소프를 포함하는 많은 사진가의 사진을 보면 여성 ( 눈길을 끄는 누드의 소재가 주로 여성이라는 점이 흥미롭긴 하다. 아마 성의 역사나 존 버거의 저서를 본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의 신체를 포함한 사진에서 대상을 복제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시도했다는 것을 사진을 보면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책은 얇고 엄청 부드럽게 넘어가진 않지만 생각을 하다보면 톱니처럼 걸린다. 아마 다른 책을 볼 때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