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2021

리조트에서의 식사

푸른세계_2 2021. 4. 19. 23:07

 코로나로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고 생각되던시기. 리조트 객실 앞의 주차장은 만석이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즐거운 표정으로 마스크를 쓴 채 손을 잡고 걷는다. 건물 옥상에서 보니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어 심리적 거리도 충분했다. 

 식당은 사람들이 가득찼다. 사회적 거리로 테이블을 두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꽤 있다. 줄서서 먹을 정도는 아니라 불편함은 없다. 평소에 딱히 찾아 먹지 않던 킹크랩의 다리를 몇개 들고 온다. 구석엔 스테이크를 구워주는 곳이 있어 기다렸다가 한접시를 가져온다. 평소 가까이에서 먹을 수 있던 음식은 제쳐두고 희귀한 음식을 찾는다. 초밥에 있는 쌀밥으로 배를 채우고 싶진 않다. 이러저리 돌다 한접시를 채우곤 자리에 앉는다. 숯불향이 입혀져 고기를 썰기 전 나무가 떠오르며 코를 자극했다. 칼로 썰었을 때 중간면들에 연한 핏빛이 돌며 천천히 떨어져 나간다. 질기지도 않고 너무 바삭하지 않은 느낌이 칼에 전해져온다. 입에 넣었을 때 생고기를 금방 구운 느낌만큼은 아니었지만 식감이 꽤 좋았다. 게다리는 한쪽이 짧은 가위로 열심히 자르다 육즙이 이리저리 흐른다. 하다보니 요령이 생겨 잘 분리해냈고 맛을 보았다. 풍부한 향이 느껴지지 않고 마트에서 파는 맛살이 떠오른다. 세상에 그 사람들이 엄청난 음식을 만든거구나.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니. 차례차례 음식들을 입에 담는다. 

 이내 시간이 흐르고 배가 약간 찼는데 갑자기 뒤에서 고오급 호텔의 카운터 혹은 저 멀리 알프스에서 목동이 몰고 다니는 초식동물의 목에나 걸려 있을법한 맑은 소리의 종소리가 들린다. 뭔가 싶었는데 갑자기 수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줄을 선다. 따라서 서야하나. 잠시 지켜보니 사람들이 들고 오는 접시엔 작은 랍스터가 올려져 있다. 왠지 사람들을 보니 줄을 서지 않아도 충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줄을 서서 받아온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좀 더 교양있게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 마이크를 가지고 "기대하고 기다리신 랍스터가 나왔습니다"라고 하기엔 아쉽다.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나 볼법한 모습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다. 카페처럼 진동벨을 나눠주기엔 수가 맞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수 많은 벨들이 울린다면 건물이 울릴 정도는 아닐테고, 재난 문자를 받으며 일제히 폰을 꺼내보는 집중력을 쓸어가며 화목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을 줄기차게 끊어내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효율적이진 않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지팡이처럼 빛을 쏜다면 어떨까? 꽤 신비롭긴 하겠다. 해체된 랍스터의 모양을 보니 신비롭긴하다. 패스트푸드점처럼 큰 화면에 "랍스터!!"라고 띄운다고 하면 어떨까. 어차피 누군가 보고 소리를 지르거나 서두를테니 눈치보고 줄서는 효과는 비슷하겠지. 딱히 적절한 방법이 떠오르진 않는다. 요리가 나왔을 때 벨을 울리며 주위를 끄는 이 방식이 그나마 나아 보인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벨소리를 듣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음식을 향해 달려가진 않을테니. 

 맛은 썩 좋았다. 몸통 부분은 오래전 게껍데기에 흥미가 없었던 것 처럼 딱히 놀랍진 않았는데 꼬리는 꽤 좋았다. 랍스터를 잡는 장면을 모니터로 보면 미친듯이 꼬리를 흔들면서 지느러미로 자신을 들어올린 존재를 시원하게 패버릴 것 처럼 흔들어대는 그 강인함과 생기가 느껴졌다. 물론 그 강인한 생명력이 지금은 사라졌지만 탄력 넘치는 쫄깃한 식감이 입 안에서 터져나갈듯 씹힐때의 그 감각은 먹는 사람을 기쁘게 할만하다. '세상에서 맛있는 음식 100'에 들지는 모르나 돈이 많아 다른 사람과 다른 소비를 하는 것을 즐긴다면 맛볼만하다. 

 이렇게 꽤 먹으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서두르며 먹는 사람은 없고 접시를 쌓아놓고 먹는 사람도 안보인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굉장히 날씬한 편이다. 피트니스센터에서 관리를 하거나 살이 덜찌는 값비싼 음식을 먹는다면 저런 몸매가 가능할까 싶다.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따금 평소의 삶과 달라지거나 달라지기 위해 다른 옷, 다른 장신구, 다른 차를 타고 다른 장소에 와서 다른 존재가 되길 꿈꾼다. 그 달콤한 꿈은 언젠가 최고점에 도달하곤 하는데 끔찍한 점은 이것이 언젠가 끝날거란 예언과 같은 생각이다. 그 격차가 클수록 더 밝게 빛나고 더 어둡게 저물어간다. 주변의 수 많은 것들이 환상을 팔고 있다. 

 아까 전부터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이 흐른다. 올드 팝도 있고 최근의 음악들도 있는데 묘하게 느리고 조금은 서글프다. 누군가 음원으로 돌리는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 부르고 있었다. 외국계로 보이는 여성과 남성인데 여성은 높고 붉은 색의 하이힐을 신고 드레스를 입고 있다. 사람들 중 대부분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 원래 그래야 하는건가? 몇곡을 부르다 퇴장하는데 가볍게 눈인사를 몇번 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오르내리면서 노래를 불렀고 어느새 옆을 지나가며 퇴장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며 얼마를 받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또 행복한지도 알 수 없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무살에는 노래를 부르며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모른다. 

 아이들이 있었지만 미약하게 들려오는 렛잇고를 향해 봉을 휘두르거나 따라 부르진 않았다. 너무나도 조용하게 불렀다. 뷔페에서 왜 렛잇고를 부르는지에 대해선 조금 의문이 생겼으나 그날 부른 노래들이 딱히 기억나진 않는다. 음식들은 괜찮았고 즐거운 시간이었으나 누군가와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면 정서적으로 딱히 친숙함이나 끈기가 느껴지는 곳은 아니었다. 묘하게도 서울 도심같은 공간이었다. 공기도 사람도.

 

 

 넷플릭스에서 미니멀리즘과 해양오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식사를 하는 동안에 크게 떠오르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