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 단순한 열정

푸른세계_2 2019. 12. 10. 00:38

 남자와 사랑에 대해 건조하다기보단 담백하게 자신의 감정을 써내려간다. 약간의 무르익은듯한 감촉이 느껴지는 문체다. 그런데 읽다보니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말하는데 주인공이 만나는 남자는 아내가 있다.

 

그 남자와 만나면서 느끼는 불안이라는 감정과 헤어짐을 다짐하는 순간. 그리고 그 이후 모든 것이 그와 연관된 것만 보인다는 모습은 이별을 겪는 연인에게서 느껴지는 그것이지만 태풍의 가장자리 보다는 태풍의 눈. 강하게 퍼지는 기운 속에서 느껴지는 그 진득한 무거움의 성향을 간직한 사람이 써내려간 일기를 보는 느낌이다. 

 헤어진 연인이 가진 슬픔. 불안한 관계에서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은 생각해보거나 느껴본 적이 없다. 대부분 따귀를 맞거나 돈다발을 들고 나오거나 한밤중에 머리채를 쥐어 뜯기고 쫒겨나며 사람들로 하여금 혐오와 동정 뒤섞인 눈빛을 받는 케릭터로 보여질 뿐이다. 드라마로 가볍게 소비해버리는 그런 대상이 아닌 심도 있게 그녀의 마음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만남을 바탕으로 하는 불안한 마음과 헤어진 뒤에 느껴지는 공허함, 사진을 보고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섬세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그 태도에서 머릿속의 풍경에 사진처럼 보였는데 책의 후반부에 설명하듯 편집증적인 태도가 몸서리를 칠만큼 소름돋았으며 그 책을 보는 나 역시 이와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책을 보는 도중 자신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 듯한 묘한 불쾌함을 느꼈다. 차라리 글을 읽는다기 보다는 어딘가에 내 생각과 감각 감정을 쏟아내는 편이 더 낫겠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호기심에 중반까지 책을 들었으나 최근에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끼거나 만남과 이별을 겪지 않아서인지 이야기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후회와 불안인 탓에 그 느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측면도 한몫했을수도 있다.  벗어나지 못하는 태도 때문인지 지루한 면도 있었다. 정작 본인이 그 입장을 느끼게 된다면 아마 이 책을 펼치며 무릎을 탁 칠수도 있겠지.

 

 책에서 느껴진 몇가지가 있다. 여성이 주체로 쓰여진 글은 느낌도 다르지만 본인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감정과 생각은 굉장히 새롭다. 우연찮게 그런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처럼 천천히 생각해보고 싶다. 책에서 느껴진 느낌 탓인지 연상의 성숙한 여인이 말하는 느낌을 가져다 주었는데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정신연령의 차이가 때로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거기에는 정서적인 안정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본인이 소설에 처음 재미를 들인것이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였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연상의 여성이 연애와 사회생활을 하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애틋하고 아름답기만한 무지갯빛 사랑이 아닌 권태와 피로를 느끼는 사랑이었다. 특히나 한밤중에 젊음을 안고 찾아와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철없고 피곤하게 다가온다는 것의 처음엔 의아했지만 그 책을 보는 순간에도 ( 당시 20대 초반이었다 ) 묘한 공감을 느끼게 되었다. 연상의 여인,그리고 연상이 아닌 연애를 할 때에 상대방의 마음을 진심으로 들어본 적은 있었을까 하는 후회도 느껴보게 됐다. 그렇다고 진득하게 만나는 것이 언제나 아름다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꼭 그래야 한다는 보장은 없다.

 

 아마 여성의 연애와 심리 혹은 불륜의 속마음에 대한 심리학 책이었다면 던져버렸을 것이다. 소설에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 작가의 첫 책을 보다가 덮어버린 탓에 같이 산 2권의 책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